愛情人 2012. 10. 13. 03:00

다희는 병실 문을 닫고선 잠들어 계신 할머니를 쳐다 보았다. 그리곤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할머니...도대체 무슨 일이야...얼마나 힘들었던거야...

           불쌍한 우리 할머니..우리 혜인이...내 이 루이스를..가만

           안둘거야....감히 우리 가족을 건들여??

다희는 그 뒤로 한참동안 할머니가 일어나실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다희야...

할머니가 힘없이 눈을 뜨시곤 다희를 불렀다.

           어..할머니...괜찮아?

           조금 놀랐을뿐이다..

           그 루이스 엄마라는 여자가 도대체 뭐라고 한거야?

           아니다..

           할머니...그만해..나 정말..으이그...속상해..!! 할머니 혼자 계실 수 있죠?

           어디를 가려는거냐? 그렇게 화난 얼굴로....

           다녀올데가 있어서 그래...나 다녀올께..금방 올께..

다희는 할머니만 병실에 남겨둔 채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선 도착한 곳은 메리어트였다.

           어..서 선생님....

           루이스 부사장님 안에 계시죠? 최비서관님 나 하나만 부탁....

           부사장님은 나 여기 온거 모르게 해줘요..부탁 할께요...

           네?? 네 ....알겠습니다..들어가 보세요....

좀 의아한 표정을 짓던 하진은 그대로 대답을 했다. 다희는 노크도 하는둥 마는둥 하고선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자료를 검토 하고 있던 혜성은 갑작스런 다희의 방문에 놀란 표정이었다.

           아...선생님....무슨 급하신 일이라도...

           네..저 표정 관리 잘 못하는거 아시죠?

           네...제가 무슨 잘못한 일이라도 있는지요...

           부사장님 말고...메이지 호텔 현정연 사장님이요!!

           네?? 사장님이 무슨....

           할머니 지금 병원에 입원하고 계세요...현 사장님덕분에...!!

           다희씨...!! 그게 무슨 소리죠?

서류를 한 가득 가지고 루이스에게 온 지혁이 그 이야기를 듣고 놀라서 물었다.

           다희씨...할머니가 왜 병원에 입원하시고...그게 현사장님 때문이라니...

           말 그대로죠...

혜성의 눈빛은 이미 분노에 가득차 있었다. 주먹을 꽉 쥔 팔뚝의 핏줄마저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 날카로움을 감추려고 혜성은 걷었던 셔츠의 단추를 잠그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밖으로 나가려고 코트를 집었다.

그 모습을 본 지혁이 혜성의 길을 막았다.

          루이스...너 지금 그 상태로 어디 가는거니?

          미안해..형..지금 나.. 도저히 이대로 가만 있을 수가 없어...여기에

          있다간 나도 날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보내줘...부탁이야...

지혁은 붉게 물든채 떨고 있는 혜성의 눈을 보자 더 이상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지혁이 잡은 손을 놓자마자 혜성은 곧바로 뛰어 나가버렸다. 아직도 다희는 화가 덜 풀려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요? 다희씨..어떻게 된건지...아 잠깐만요..

지혁은 다희에게 병원과 병실 호수를 물어본 후 은희에게 전화를 걸어서 할머니께 가 보라고 했다.

          감사해요..총지배인님은 정말 우리 혜인이에게 좋은 오빠같아요..

          루이스는 아닌 것 같구요...

          네? 루이스가...

          아...아니예요...도대체 그 메이지 사장은 정신이 있는건지..없는건지...

          다 큰 아들을...우리 혜인이는 무슨 죄구.할머니는 또...아후...진짜...

          혜인이...설마...혜인이한테도 간건가요? 이런....정말..

지혁은 큰 충격에 빠진 듯 머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혜인이에게 전화를 걸려고 핸드폰을 들자 다희가 말렸다.

          하지 마세요..제가 좀 전에 해봤는데....이 바보같은게 전혀 내색을 안해요..

          괜히 상처 들춰 내는 것 밖에 안되니 참으세요...총지배인님도 아시죠...?

          유전자 검사 결과...루이스와 찬성이...

          네.....역시 그게 참 의문스러운데...어떻게 그런 결과가....다희씨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다희가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지혁에게 비장한 모습으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총지배인님....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혜인이를 진짜 동생처럼 생각하시죠?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혜인이에게 윤지혁이라는 오빠 말고 정말 피가 섞인 오빠가 존재한다면요?

           다희씨..그게 무슨 소린가요? 혜인이에게 친 오빠가? 혜인이 아버님은 외아들..

           아니었나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요....친척이라도 나타난건가요?

           네..혜인이 아버지 외아들 맞아요..혜인이 할아버지도 외 아들....

           다희씨....제발 이해 할 수 있게끔 말을 좀...혹시...

           네..엄청난 사실을 알고 있어요...제가.....

지혁은 순간 머릿속에 혜성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선 그 생각에 흠짓 놀라버렸다.

           루이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계셨죠? 총지배인님도...

           그게...어떻게 가능하단건지요..

           제가....불법적인 일을 저질렀어요...의사로서 치명적일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 혜인이를 생각하면..전 의사 옷 벗어도 상관없어요....

           불법적인....

           할머니와 루이스...유전자 검사..해 봤어요....결과는...

           맞았군요....

순간 지혁은 고개를 떨구었다. 한참을 말 없이 고개만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그동안에 다희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저도 처음엔 도저희 말이 안된다고 속으로 다짐하고 또 했었는데..

           날마다 루이스와 할머니를 보면서...그리고 혜인이...세 사람......

           뭔가 가늘고 끈끈하게 엮어져 있는 것 같은....저도 결과를 확인하고

           얼마나 놀랐던지....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해요....총지배인님 이 일을

           어떻게 풀어가야할지...혜인이 아버지가 그러실 분은 절대로 아닌데...

           하지만 그 것 밖에 해답이 없지 않나요? 이 일을 혜인이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루이스에겐 또....

           지금 혜인이에게 말하는건 무리죠...일단 루이스가 어디로 갔는지부터

           알아보고 루이스에게 말 해야죠...그래야 우리 부사장님과의 얽히고 설킨

           악감정을 끊을 수 있으니깐요....한편으론 참 다행이네요...

           그렇죠...옆에서 보기에 정말 안타까울정도로 루이스.. 혜인이 챙겼었는데..

           그게 다 동생으로 끌렸기 때문이었다니...정말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의사입장에서도 정말 놀라운 일이죠...그런데 루이스도 그렇지만 할머니는 

           또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세상에 할머니와 혜인이 단 둘만 남은줄 알았는데 할머니에게 손자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할머니는 힘이 날거예요..물론 처음에는 많이 힘드시겠지만...

           일단 루이스에게 알리죠...

그렇게 정신없이 뛰쳐 나간 혜성은 공항으로 바로 향했다. 그리고는 가장 빠른 일본행 티켓을 끊었다.

기다리는 시간동안  혜성의 분노는 더욱 더 커져만 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낮익은 유황향이 혜성의 코끝을 자극했다. 고향에 돌아 왔다는 기쁨도 잠시 곧장 메이지로 향했다. 그리고... 메이지 앞에 도착했다.

혜성은 더 이상 분노를 억누를 수 없을만큼 흥분한 상태였다. 어느새 밤이 되어 메이지는 화려한 조명 아래 웅장한 모습을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혜성이 떠나올때 모습 그대로 였다. 하지만 두 눈에 아무것도 담고 싶지 않은 혜성의 눈엔 메이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드디어 메이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메이지의 모든 직원들이 혜성을 보곤 깜짝 놀라서 인사를 꾸벅 하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익숙한 길이었지만 메이지의

오너에게 가는 길은 굉장히 멀게 느껴졌다. 이미 혜성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은 비서실장이 혜성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부사장님...

           사장님 안에 계시죠?

           지금은....

           나에게 그런 말이 통할거라 생각하십니까!!!

혜성이 제일 화 났을 때의 말투가 나오자 비서실장은 자리를 비켜줄 수 밖에 없었다. 사장실의 문을 노크도 없이 열고 들어갔다. 현사장님은 의자에 앉아 혜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정연 사장님...오늘 당신이 한국에서 하셨던 일 후회하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래....네가 메이지의 문을 연 순간...네가 다시 돌아 올거라는 생각같은 건

           한 적 없다....

혜성의 흥분한 목소리에 비해 현사장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하고 냉정했다.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이렇게 태평하십니까?

           이게 오너야...!

차분하지만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강한 어조의 말투로 현사장은 말했다. 그 한마디에 혜성은 숨이 막혀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현혜성....넌 네 마음 하나 컨트롤 할 줄도 모른채 직원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은거니...? 이래서 어디 메이지 3대 사장이 될 수 있겠냔말이다!!

           지금 현사장님 훈계 받으러 온 것 아닙니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더 이상!!

           메이지에 절 끼워 넣으려 하지 마십시오..현사장님이..!! 할머니께 저지른

           죄값 물으러 온 것 뿐입니다..

순간 현사장도 얼굴색이 변했다.

           그래......? 그럼 현혜성...다음은 혜인이 죄값을 물을텐가....??

현사장의 그 말 한마디에 혜성은 휘청거리는 자신의 몸을 벽에 기대었다. 

           제가 그걸 놓쳤군요...한국에 오신 이유가 혜인씨..때문이었다는걸....

그리고는 고개를 떨군 채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그렇게 내가 그 두 사람을 만난게 커다란 잘못인거니? 가족인 나보다도

           그 두 사람이 너에겐 더 중요하단 말인거니? 내가 널 잘못 키웠구나...

           어머니가 절 키우셨나요? 어떻게 그 입에서 절 키우셨단 말이 나올 수가 있냐구요!!

           더 이상 이 곳에서 제가 들을 만한 이야기는 없는 것 같군요...그럼 전 이만...

혜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긋하게 의자 깊숙히 앉아 있던 현사장이 다급히 일어섰다.

           현혜성! 제발 정신차려라..넌 메이지 3대 사장이 될 몸이야.....!!

           죄송합니다만...더 이상 저에게 뭘 기대하신다면 그 만큼 사장님...상처도 깊어질

           겁니다..이젠 정말 마지막으로 불러드립니다....어머니..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선 혜성은 매정할 만큼 차갑게 뒤돌아서서 현사장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