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내가 왔소...!!
난 메이드나 하련다....너 자꾸 문 벌컥벌컥 열꺼야???
제시가 소리를 지르면서 베게를 문아에게 던졌다. 재빨리 베게를 받아 든 문아가 웃으면서 설렁설렁 걸어왔다.
너...핸드폰 어디다 뒀어? 너 그거 없음 죽잖아....
몰라...기억이 안나....
어련하시겠어요....? 언제쯤 제정신으로 돌아 올래???
몰라....
전화는 해본거야??
나 번호 몰라...
우와...완전 미쳐미쳐....너 그거 사실이야?? 제시야....제발.....
갈수록 태산이 첩첩산중이었다. 문아는 지글지글해진 머리를 긁적이며 제시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그저그저였다.
용건이 뭐야...? 빨리 말해....나 어제 잠 잘 못자서 또 잘꺼야....
그리고선 맹한 표정으로 문아에게 던졌던 베게를 다시 빼앗았다. 얼떨결에 베게를 놓친 문아는 허전해진 손을 아래로 떨구더니 여전히 무반응의제시의 귀가 솔깃할만한 대화거리를 찾아냈다.
너 핸드폰....생선파티 한 곳에 있다..
문아에게서 빼앗은 베게를 침대에 던지듯 놓고 누우려던 제시는 그제서야 행동을 멈췄다.
가서 찾아와...오늘 저녁에 주인장 있는다는데...?
네가 찾아와....나 피곤해....이렇게 잠 못자고 있으면 마무리 못 하는거
네가 더 잘 알잖아...마감까지 얼마 안 남은걸로 아는데...?
얌마.....니 핸드폰을 나한테...그리고...주인양반이 턱에 수염이 까끌거리는
나같은 놈을 보고 싶어하겠냐? 너처럼 섹시미가 줄줄 흐르는....아...!!
또 다시 주책바가지 문아는 오버 액션을 시작했다. 보경만큼은 아니지만 제시 역시 참다 못해 문아에게 베게를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침대로 들어가 이불을 덮어버렸다. 문아의 오버 액션도 끝..평소의 덜렁이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어진 장문아는 이불에 대고 나름 진지하게 말을 했다.
너 그 핸드폰 없음 안되는 애잖아.....참고로 난 그 집 갈일 없다.....
춥다...보일러 좀 올리고 살아라....
문아는 꺼져 있는 보일러의 전원을 올리더니 조용히 나갔다.
벌써 시간이....
핸드폰의 주인이 알고 싶은 류호는 평소보다도 빨리 퇴근을 해서 집에 있었다. 하지만 이미 10시가 넘어버렸다. 혹시 모를 연락에 그는 자신의 충전기에 그 핸드폰을 꽂아 보려 노력했지만 맞지 않았다.
아....내건 한국에 들어 오면서 한거였지...이건....기종이....아...아저씨...
얼마 후 집사가 자신의 충전기를 가지고 들어왔다.
이건 맞는 것 같네요....죄송해요,,쉬고 계시는데......
이 핸드폰....아무래도 낯이 많이 익네요....
류호만큼 이 핸드폰에 관심을 보이는 노집사의 시선이 핸드폰에 한참동안 머물렀다.
같은 기종인가요??
아니...그게 아니라.....
혹시.....아저씨도 들으셨어요? 그 벨소리...
네...작은 사모님 벨소리였죠......
두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핸드폰의 문자 알림 벨이 울렸다. 그리고 류호는 실망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집사에게 웃어보였다.
핸드폰 주인이 안 온다는군요....궁금했는데...누굴지.....
그럼 도련님이 직접 그 분께 가져다 주시는건 어떨까요?? 이렇게 초조해하면서
기다리시지 마시구요....
네? 아.....그럼 주소를 알아야겠군요....
도련님의 걱정거리를 해결 해 준 집사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방을 나섰다.
엥? 직접 오신다고? 제시 주소를 가르쳐 달라는데??
정말?? 이거 이거....정말 사고 제대로 친 것 같은데.....?
사장님이 그리도 원하신다면야....못 이긴척...가르쳐 드려야져....음...
핸드폰의 자판을 누르는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신이 난 문아는 혼자서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보경이 그의 등에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아이...어떻하고 있어? 거의 실신하기 직전이지?
그러지 뭐....핸드폰이 운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녀석인데....그런데도
찾으러 안 가겠다는 건.........
힘들겠지....지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도 잘 모르고 있는 제신데......
아 몰라 몰라....뭐가 그리도 복잡하냐? 난 가르쳐 줬으니깐.....제발 꽃단장까진
아니더래도...오늘 아침 그 꼴만 아니면 되는뎅.....
그녀의 한숨섞인 푸념을 듣는 순간 또 다시 머리가 지글지글해진 문아는 핸드폰을 내팽겨치듯 던지더니 이불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냅둬....아침에 부시시한 모습까지 본 사인데.....잘 되면 다이아몬드라도 으흐흐...
응큼한 미소를 지으며 보경은 불을 끄고선 문아가 누워 있는 침대로 스르륵 미끄러지 듯 들어갔다.
여긴가.....내가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몇 호라고 했지..?
다음날 오전 일을 대충 끝내버린 류호는 주소가 적힌 메모지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고선 엘리베이터를 탔다.
여기군......
핸드폰의 주인이 굉장히 궁금했던 그는 집 앞에 도착하자 긴장한 듯 심장이 크게 뛰고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벨을 눌렀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는 또 한번 벨을 눌렀다. 드디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바로....그 날 그 눈물의 그녀였다. 순간 류호의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던 그의 앞에 그녀는 차가웠다.
전 메이드 그만 뒀는데요....
그리고는 그녀는 문을 닫아버리려고 했다.
잠깐만....
류호는 현관문을 붙잡았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핸드폰의 주인이 그녀라니....게다가 그날 활발했던 그녀는 어디 가버리고 무표정의 차가운 시선만 남은 그녀를 보자 류호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저 그녀가 이 문을 닫지 않게 잡고 있을 수 밖에...
잠깐만요.......
전..!! 메이드도 관뒀고....우리 사이에 또 뭔가가 남았나요?? 아니시라면 이만...
이 어이없는 상황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는 그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류호는 안주머니에서 소중히 그 핸드폰을 꺼냈다. 허나 여전히 긴장한 탓인지 안주머니에 함께 들어 있던 쥬얼리 사진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
그제서야 핸드폰을 받아 든 제시는 얼굴에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 미소는 사라졌고 긴장한 류호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남겼다.
그 토파즈는 브라질산이군요....하지만 천연은 아니네요...아쉽군요...
사진....그녀의 미소에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사진...류호가 그 토파즈 사진을 주우려 고개를 숙이자 제시는 재빨리 문을 닫아 버렸다.
잠시만요....잠깐 문 좀...열어 주세요......제발...묻고 싶은게 있는데.....
류호는 다급한 마음에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문은 굳게 닫혀진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눈 앞에서 핸드폰도...그녀도 놓쳐버린 그는 허무해졌다. 이젠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인 듯 한참을 그 앞에서 멍하니 서 있던 그는 토파즈 사진을 집어 들고선 자리를 떴다.
5센티도 안되는 사진을 보고도 알아내다니....뭐지....저 여자......
아직 미련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사무실에서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그의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사장님....무슨 일 있으셨어요? 안색이....
최실장님...이 토파즈...천연이 아니더군요....
네...? 브라질 산지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죄송한데 좀 더 자세히 알아 봐 주세요..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천연이예요...!!
네...알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와 의자에 앉았지만 머릿 속을 계속 맴돌고 있는 그녀의 촛점 없는 눈동자가 너무나 거슬렀다. 일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무작정 핸드폰을 꺼내든 그는 전화를 걸었다.
-네....장문아입니다....-
-저...전...쥬얼리 HAN의 대표 천류호입니다...친구분의 핸드폰 때문에....-
-아..네....제 친구가 좀 몸이 안 좋아서..죄송했습니다...혹시 집을 못 찾으셨나요??-
-아닙니다....아 친구분이 몸이 안 좋으셨군요...저번에 봤을 때 보다 안색이 많이 안좋던데요....-
-걱정....하셨나요?? 사장님???-
-네? 아....그렇죠......-
-그 녀석 아주 착실한 친구예요.....-
-네...? 아....그렇더군요....정말...착실한......아..혹시 친구분 이름이....-
-오...세상에....이런 무뢰한....바쁘신 사장님께서 직접 핸드폰을 가져다 주셨는데...
혹시...문 앞에서 핸드폰 돌려 주시고 돌아 오셨어요??-
핸드폰 너머로까지 보일 듯한 문아의 오버액션이 또 다시 시작되었다.
-아..네.....그게....-
-아흐...죄송해요....제시가 좀 컨디션 조절이 안 되서요...대신 제가 용서를...-
-제시.....이름이 제시인가요.....?-
-아..네 함제시예요..암튼 죄송합니다...제 친구가 원래는 그런 애가 아닌데...-
보이지 않는 그를 향해 문아는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친절한 류호는 그에게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네....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원래 그런 애 아니예요....착하고 성실하고.....-
-그래서 말인데요....다시 찾아가도 될까요...? 물어 볼게 있는데요...-
-그럼요...당연히 되지요...걱정마시고 제가 교육 시켜 놓을께요...걱정 마시고 가세요...-
-네...감사합니다..그럼-
문아와의 통화가 끝나자 그제서야 류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제시...함제시.......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미소가 저절로 생겨났다.
야....함제시...너 왜 그랬어??
제시의 현관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또 다시 문이 벌컥 열리고 문아가 다짜고짜 들어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또 뭐야.....이거나 받아...
일상인 듯 별로 놀라지도 않던 제시는 문아에게 서류봉투 하나를 던지듯 줬다. 그것을 받아 든 문아는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음..고맙다...잠깐...이건 이거고 도대체 너...왜 그랬냐?
또 뭘...
핸드폰 고이 모셔다 드린 분한테 그게 뭐냐??
자기 애인한테 바칠 토파즈 사진이나 가슴에 품고 있는 그 분??
문아가 말하고 있는 그 남자가 생각이 난 제시는 어이없고 귀찮은 듯 대충 대답을 하더니 인상을 찌뿌렸다.
그건 또 뭔소리야? 뭐...암튼 일부러 시간 내서 얌마...니가 안간다고 버텨서...
직접 오신 분한테...문전박대라.....이런 일이....
제시가 한 말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던 그는 혼자서만 고뇌한 듯 심오한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던 중 제시에게 봉변을 당했다.
너야? 우리집 주소 분 녀석이...그래...너 말고 누가 또 있겠니.....가라....나
그 원고 쓰느라 잠도 못잤으니깐......나 이제부터 동면이다....잘가...
마구마구 밀어내는 제시에게 힘을 쓸 겨를도 없이 현관 앞까지 도착해버렸다.
이야....함제시.....어휴....널 누가 말려....뭐...어쨌든 원고는 땡큐!!
제시는 문아의 배웅조차 해 줄 마음이 없는 듯 또 다시 침대에 이불을 흠뻑 쓰고선 누워버렸다.
함제시.....쥬얼리에 대해서 뭔가 많이 알고 있는 듯 했는데....이쪽 관련된 일을 하나...
그래서 온건가....그 파티에......흠.....그런데...그 표정은....
류호는 침대에 누워 호기심 가득했던 그 날의 제시를 생각했다. 그 뜨거웠던 밤도...하지만 오늘 만난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도대체 당신의 진짜 모습은 뭐지...왜 이렇게 궁금한거지.....
류호는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