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은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속내를 들어내지 않으시던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한 것에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혜인이를 거부하지 않아서 한편으론 고맙게도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봐 왔던 어머니가 아니기에

경계심이 생겨났지만 일단은 내일 일정을 미루시고 자신과 혜인이 곁에 있겠다는 생각만으로 안심이 됐다..

혜인이가 잠든 방에 다시 한번 들여다 보고 다시 어머니가 편안하신지 확인하고 나서야 호텔로 향할 수가 있었다..사장님의 내일 일정까지 다 체크를 한 후 마무리를 짓자 어느새 새벽이 되어 버렸다..그리곤 다시 집으

로 돌아왔다.. 피곤한 하루였지만 집엔 자신을 기다리는 두 여인이 있기에 운전하는 동안에도 입가엔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한편 한국에선...

         혜인이 어디 간거야?? 소윤아..말해바...

         아후...좀 조용히 해...다희언니가 혜인이 아직 환자라고 요양 보냈다니깐...

         알았어....

         제발 그만 가주라..언제까지 날 괴롭힐거야?? 이 새벽에....

그렇게 야근을 하고 바로 소윤이 집으로 달려온 무영이를 문 밖에서 다시 내쫓았다..그리곤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 네...언니....아니 무영이가 찾아와서 ...저 힘들었어요...총지배인님도

          그러시구...어떻해요..부사장님...곧 오실 것 같던데....-

       - 버틸때까지 버티는거지 뭐..총지배인님은 어떻게 해보겠는데..나도 부사장님은...

          근데..너네 호텔 무슨 일이니?? 애처가이신 부사장님을 미국까지 보낼 정도면...-

       - 자세한건 잘 모르겠어요...약간 심각한 일인 것 같은데..저로선 선뜻 물어보기가...-

       - 그래 알았어..근데 혜인이...잘 도착했단 전화 한 통화로 끝?? -

       - 네....잘 마무리 짓고 돌아올지...전 아직도 걱정이예요..이렇게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 줄은 아는지...얼마나 있다가 돌아올지...아니 찬성이도 안보고 싶나??

         전 아직도 이해 할 수가 없어요...도대체 뭘 알려고 거기까지 가고....어휴..-

       - 소윤아 그만 흥분하고..이 새벽에....낼 전화 해봐 로밍해갔으니깐...잘 할거야..

          혜인이...믿어보자...잘 자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콜...??-

       - 네 언니도 잘 주무시구요..낼 전화 드릴께요....-

그렇게 한국과 일본의 밤은 깊어만 갔다..

아침이 되자 혜성은 혜인이 방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하지만 뒤에서 잡는 이가 있었으니...

          더 자게 놔두거라...

          어머니....

          놀랄 필요까진 없잖니..? 자기 집도 아니고 게다가 낮선 나라에 와서 그리고..임신중...

          지금 혜인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혼란스러울거다..너 하나 믿고 여기까지 오다니...

          저 아이도 한 고집하는구나..? 안그러니?? 현혜성??

          어머니...다 아신 거예요? 저번 일...??

          그럼..내 밑으로 천명이 넘게 일하고 있는데...바로 밑의 부사장이 하는 일을 모르면

          어떻게 천명의 일을 알겠니? 그래도 그 잠깐 얼굴 보고 오니 네 얼굴도 많이 편안해

          졌더구나...

          네....저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사람에게 관심도 없었는데....

          혜인씨는 처음 본 순간부터....어머니..이게 사랑인가요??

          글쎄다....이게 사랑이라면..문제는 복잡해지지....저 아이...이미 부군이 있잖니..?

          부군,,,,? 아...남편이요?? 제가 너무 이기적인가요??

          그럼 나 또한 이기적인건가?? 이런 너를 받아들이고 있는 나는....왠지 저 아이...

          감싸주고 안아주고 싶구나...나 또한 널 아버지 없이 키워서 그런지 혼자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겠니....? 찬성이라고 했지? 아들...그 애도 너처럼 커나갈까봐

          걱정도 된단다...아버지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부정하고..

          난 내 상처만 걱정하고 네 아픔은 생각 조차 하지 않았어...나만 버림 받은 줄 알았지..

          그렇게 힘든걸 알고 난 후엔 이미 너무 많이 늦었었지..넌 이미 한국조차 부정해버렸지..

          그런데....그런 널...저 아이가 변화 시킬 줄이야...혜성아...이미 부군이 있는 저 아이를

          네가 데려온다면...그 죄값은 내가 받겠다....

          어......어머니..............

혜성은 너무나도 뜻밖의 말은 들어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앞치마를 입고 있던 메이지 호텔의 사장은 다시 주방으로 들어 갔다..그리고 조금 있다가 혜인이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그 모습이 귀여웠던지 멍하게 서있던 혜성의 얼굴에 미소를 만들었다..

         어..혜인씨..잘 잤어요?? 잠자리는 편했어요??

         어머...죄송해요.....너무 정신없는 모습을 보여셔...

그렇게 말하면서 얼른 욕실로 갔다....그 뒤를 혜성이 조심히 뒤따라 갔다....

         어,,,?

         들어가요...

         네??

         어젠 너무 피곤해서 우리 호텔 최고의 온천을 즐기지 못했잖아요...??

         어...그래도....

         괜찮아요....일부러 제가 받아 놓은 물이예요....일부러 저기 삿포로에서도 임산부가 오는걸요??

         네?? 일부러 온천 때문에 거기서 여기까지 온다구요??

         혼자 들어가기 부담스러우면 같이?

         허...혜성씨.....점점 변태스러워지는데요???

혜인이 놀라면서 혜성을 째려봤다....그 모습 조차도 예뻐 보이는 혜성이 웃었다..

         아..죄송합니다....농담..농담입니다....배 고프죠?? 잠깐 피로만 풀고 나와요..알겠죠??

그제서야 혜인은 안심을 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어머니?

혜성은 주방으로 들어가자 또 다시 굳어버렸다...

         그래...혜인이는 일어난거니?? 아침부터 욕조에 물 받고 온도 맞추고 하더니 성공한거니?

         어머니...이....음식들.....어머니가 다 하신건가요??

         그래....정확히 누구에게 배웠는지는 아직도 기억이 잘 안나지만...한국에 있을때..배운것들인데..

         저 아이 입맞에 맞을지 모르겠구나....한국 마트에서 새벽에 사온 것들로 만들긴 했는데...

          지금 입덧도 할 땐데...걱정스럽구나.....

         어머니...그거 알아요?? 혜인씨가 저 말고도 어머니도 변화 시킨걸요....?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현사장은 혜성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이런 여유...너와 함께...맞을거란 생각 못해 봤구나....그래...저 아이...

         우리에게 이런 여유까지 만들어 준...고맙다고 해야하나.....?

         저....

둘이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혜인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아..혜인씨....들어 와요...아 이분은 제 어머니이시자 메이지 호텔의 현정연 사장님...

          자...여긴 집이니깐 어머니..이 귀여운 여인이 한혜인씨...

          안녕하세요...한 혜인이라고 합니다..사장님...미인이세요...

혜인이 인사를 하면서 해맑게 웃음을 보이자 현 사장은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하지만 그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심호흡을 한 번하고 다시 우아한 미소를 지었다...

          반가워요...혜인씨도 참 맑아 보여요...아..어서 앉아요..손님이 오신 줄도 모르고..

          어제 맞았어야하는데....늦었어요..최대한 한국 재료로 만들어 본건데..입맞에 맞을지..

          사장님이 직접 만드신건가요?? 너무 황송해서....저 이런 대접 받아도 될련지요...

          황송?? 그건 무슨 말이예요?? 혜인씨..아..한국말 좀 더 공부 해 두는건데....

혜성의 말에 현사장과 혜인이는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모두 식탁에 앉았다...

          음...맛있어요...꼭 우리 할머니가 해 주신 음식들 같아요..정말 맛있어요...

          아....할머니와 산다고 했죠??

          네...어..이건 우리 할머니가 어묵 속에 고추 넣어서 만들어 주신건데...

          그래요?? 한국에서 이렇게 만들어 먹나봐요?? 저도 한국에 있을때 잠깐 누구에게

          배운건데.....

          아 네...그 분도 이렇게 만드셨나봐요...아무튼 일본에서 이 반찬을 만나니 반갑네요...

          이런...어머니..이렇게 요리를 잘하시면서..앞으론 종종 해주세요..

혜성은 처음 먹어 본 한국 요리에 어머니의 요리 솜씨에 두 번 놀라서 이것 저것 다 먹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난 후 잠시 거실에서 차를 마셨다...

           임신중인데...다행히 아침 먹는데 입덧은 없어서 다행이네요...

           네...편안하게 음식을 접하면 다행히 입덧은 안하게 되더라구요...

           그럼 우리 집에서 먹은 음식들은 편한거라고 생각해도 되죠??

           아..그런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혜인씨...

           네..사장님....

           우리 혜성이 어떻게 생각해요??

           네??

           어머니..너무 직설적이세요,,.....

           솔직히...혜인씨...아무것도 생각 안하고 그냥 좋아요..아마 혜성이도 그런 감정일거예요..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잖아요....혜인씨는 배속의 아이 아빠 없어도 되나요??

순간 혜인은 주하가 생각났다....

           그 사람....없으면 안돼요.....

           그럼 여기까지 온 이유는 뭔가요?

           뭐에 홀린 듯...온 것 같아요..사실 전 처음에 너무나도 깜짝 놀랐어요...혜성씨를 처음 본 순간

           제 아버지를 본 듯 한 착각을 했어요..그리곤 첫 만남에서 편안함을 느꼈구요....그 느낌

           잊을 수가 없었어요...그러다 제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구요..꿈 속에서 아버지를 만났어요...

           아버지가 절 불렀어요..그래서 잠에서 깨어났구요...나중에 들었는데...혜성씨가 그 시간에

           절 만나러 일본에서 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그리고 일본행 비행기 티켓...

           그럼 단지 아버지같은 느낌 때문에......한국의 모든걸 내려 놓고 여기까지 온건가요???

           우리 혜성이를 만나러??

           어머니...혜인씨....아직 컨디션 회복 안 된거예요....

혜성이 현사장을 막으려 하자 혜인이 다시 혜성을 말렸다..

            아니요....혜성씨....저 괜찮아요..여기까지 왔는데.....무슨 해답이라도 찾으려고 왔는데

            못찾겠어요....안이 까만 유리병같아요..들어다 볼수록 점점 더 안보이는....혜성씨를

            만나러 여기에 왔지만...더 이상 깊어질 순 없어요..

            혜인씨...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전 할머니와 지금껏 부모님 없이 지내왔어요..혜성씨와 살아 온

            배경부터가 다른거죠....지금도 이 생활은 변함이 없구요....게다가 전 두 아이의 엄마예요..

            첨부터 혜성씨와 어떻게 해보겠단 생각 같은건 해본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한가지만 더 물을께요...아이 아빠와 같이 사는건 아닌가요???

            네..사장님....어쩌다보니 지금 배속의 아이가 생겨버려서.....

            그럼 우리 혜성이와 잘 해볼 생각은 전혀 없나요??

            네?? 무슨 소린지...잘 모르겠습니다..사장님....

            그만...그만하세요..어머니..혜인씨..힘들어요......

            난 우리 혜성이가 이런 말 하는거 처음 봐요...할아버지가 아프셔도 이런 말 한적...

            단 한번도 없는 아이였죠.....그 누구에게도 따뜻한 인정을 베푼 적 없는 아인데...

            지금 혜인씨 감정...혜성이 감정..그리고 내 감정...같은것 같은데....내 욕심인가요???

            그냥 우리 곁에 있어주면 안되나요?? 혜인씨??

현사장의 말에 너무나도 놀란 혜성과 혜인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리곤 혜성이 현사장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혜인이도 그만 방으로 돌아가서 침대에 누웠다. 적막한 방안엔 물레방아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 순간 전화기에서 부재중 전화음이 울렸다. 바로 소윤이였다..그리곤 문자도 와있었다...

            -혜인아...괜찮니??? 전화 안받네?? 무슨일 없지??

             아무래도 부사장님.... 일이 잘 안 풀리신 듯..하다-

그 문자를 본 순간 혜인이는 주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아무생각 없이 바로 전화를 들어 1번을 눌렀다..

한참동안 신호음만 들려왔다..안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혜인아.....-

순간 전화기에서 낮익은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목이 메어와 대답조차 할 수가 없었다..

             -보고 싶다....미치게....-

주하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지쳐 있었다..옆에 있었다면 꼭 껴안고 절대로 놓고 싶지 않을 만큼 간절하게 보고 싶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둘은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너 깨어날 때 곁에 있어 주고 싶었는데..미안하다...미안해......-

             -선...배.......-

혜인이는 그 한마디를 겨우 하고선 또 다시 목이 메어왔다.......

             -다행이야....깨어나줘서 고맙다....그리고...사랑한다...혜인아.....-

순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자 감정에 복받혀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혜인아..나 때문에 더이상 아프지마.....내가 네 몫까지 다 아플께......-

손으로 입을 막은 채 혜인이는 고개를 저었다....지금 이렇게 간절히 원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지금

 자신은 감정에 이끌린채로 이곳까지 와서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는 생각에 뼈속까지 아려왔다..

그렇게 통화를 하는 동안 전화기에서 북적대는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 혜인아 보고 싶다. 미안하고...사랑한다..내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다...그제서야 혜인이는 입에서 손을 떼고 소리내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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