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니...죄송해요...간밤에 잠을 잘 못 잤더니..정신이...
그럼 제가 커피라도 한 잔 타 드릴까요??
아니 됐어요.....최실장님..그 유능한 능력을 커피를 타라고 뽑은 건 아니니깐요..
어두웠던 표정을 순식간에 걷어버리고선 다정스럽게 미소를 짓는 사장에게 최실장은 은근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제 걱정 그만 하시고 어제 부탁했던 서류 마무리 좀 해서 가져오세요..
네...알겠습니다...사장님....
최실장이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나가자 그는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주인 없는 핸드폰을 다시 꺼냈다. 여전히 배경화면에 덩그라니 앉아 있는 푸른 곰이 신경이 쓰인 그였다. 하지만 기다리던 주인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누구길래....핸드폰을 찾지도 않는거지....
아침부터 퇴근 후까지 그 핸드폰은 단 한번도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집 앞에 도착한 그는 대문 앞에 서자 문득 그녀가 생각이 났다.
흠.....내가 왜 이러지....
오늘따라 유난히 무거운 발걸음은 계단을 오르는 그를 방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힘겹게 방문을 여는 순간 그의 머릿속은 희미해져가던 그녀로 또 다시 가득차버렸다. 바로 어젯밤 불에 그을렸던 그녀의 스웨터가 탁자 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다시 그녀의 흔적을 찾아 침대로 향한 그는 이내 깊은 실망감에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그랬지...내가....흐트러진 걸 싫어하니....
그는 자신의 방을 한번 둘러보더니 모든 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방....빈틈이 없을 정도로 완벽함에 고개를 숙였다.
언제부터였을까....이 병....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그녀를 생각하며 샤워를 마친 그는 침대에 걸터 앉아 또 다시 그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너..핸드폰 어디 있어??
몰라...나 배고프다...밥 좀 해주라....
니 집에 가서 묵어라!! 일 안 할거면 빨리 가라구....
태연한 척 애를 쓰고 있는 제시를 바라보는 보경은 꾹꾹 눌러놨던 화가 치밀어 오른 듯 현관문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그 순간 현관문이 열리더니 너털 웃음을 지으며 문아가 들어오다 깜짝 놀라 보경을 노려 보았다.
뭐야? 어따대고 손가락질이야? 어? 우리 공주도 있었네? 내 그럴 줄 알고 3인분 사가지고 왔지..음...
또 공주타령이네...그럼 문아 넌 왕자님이더냐?? 어휴..이 화상들...!! 빨리 가지고나 와..니 공주님이
지금 배 고푸단다...빨리와...
오...알았어...우리 공주 배 고팠구나....넌 생선까스야...
지겹지도 않냐..? 그 생선...? 온 몸에 비린내 진동하겠네...
아직도 보경은 두 사람의 모든 행동 말투가 맘에 안 드는 듯 비꼬는 표정으로 투덜거렸지만 진정 공주를 대하듯 문아의 행동은 끝이 없었다.
아...어제는 미안....너 사장님하고 어찌나 다정하던지...그래서 두고 왔지 뭐...!
뭔 소리야? 사장이라니...어제 애랑 생선 꾸던 그 남자가 사장이라구??
야....은보경....너 밥태기 튄다....왜....무슨 일인데...?
저거 제시...오늘 아침에 오자마자 내 사후 피임약 먹었다....
뭐...뭐라구...? 야....그 사장님.....신사야.....설마....네가 유혹 한 거야???
그래...나 타락천사잖아....
제시는 생선까스를 한 입 베어 물더니 어린 아이 같은 미소를 짓자 이내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제시의 상태를 짐작하고 있는 둘은 그저 조용히 도시락을 먹을 뿐이었다.
잘 먹고...잘 자고 잘 간다....내일은 나 못 오니깐 너희 둘이 마무리 지어...!!
어디 가려구??
너....또 운이 집에 가려는 거야? 이제 그만해...운이 어머니도 너 싫어하잖아...!!
팔짱을 낀채 여전히 못 마땅한 표정을 짓는 보경과는 달리 문아는 현관 문 앞까지 따라와 나가려는 제시를 뒤에서 껴안았다.
제시야....그만 하자....
운이걸 다시 돌려주려는 것 뿐이야...걱정 하지마...
매번 겪는 일인 듯...여전히 똑같은 말투로 제시는 문아의 손을 다독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이 자식아...네가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다구...난.....!!!
갑작스런 문아의 큰 소리에 제시는 잠시 놀랐지만 본인보다도 뒤에 서 있을 보경이 신경이 쓰였다.
보경이가 놀라잖아....그만 놀려....장문아.....
문아가 널 좋아했던 건 사실이잖아...그만 문아 힘들게 하고...문아가 힘들면
나도 힘들어....함제시...너.....언제까지 아물지 않은 상처에 소금 뿌릴거야??
죽을때까지........
이런 미친...그래....니 맘대로 해....네 인생의 끝이 이거였어??
보경의 험한 말을 뒤로 한 채 제시는 문아의 손을 풀더니 그대로 나가버렸다. 밖은 새까만 어둠과 칼 같은 추위가 제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오지 말라고 했잖니...너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거야??
어머니.....다시는 오지 않겠습니다..그러니 이것만...
제시의 손에는 서류봉투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운의 어머니는 그 손을 뿌리치시고는 역정만 내고 계셨다. 그리고 그 봉투를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다 대문 앞까지 제시는 쫒겨 나고 있었다.
너 왜 이렇게 말끼를 못 알아 들어...?
어머니...이건 운이 거예요...
그게 왜 운이거니...? 네 앞으로 된거잖니....네거야...가져가...!!
어머니!! 아들 천류운...목숨이예요...제발....
점점 닫혀지고 있는 대문 앞에서 다급해진 제시는 애원하듯 그녀를 향해 무릎을 꿇어 버렸다. 그 한마디에 운의 어머니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선 아들을 떠올리며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그건 날 위해 우리 운이가 준비한게 아니야..널 위해....혼자 남을 널......위해
준비 한 거지....아직도 모르겠니? 이젠 운이 잊고 잘 살아...제발.....
어머니에게도 운이 밖에 없었잖아요...저도 그래요....운이가 없는 전 없어요...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제시의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제시의 눈물을 보고 싶지 않은 듯 끝내 외면한 그녀는또 다시 가시가 잔뜩 돋힌 말을 하고 있었다.
제발...가라....네가 올 때마다 기껏 잊고 있던 내 아들 운이가...다시 생각이.....
생각이 나서 정말..이젠 너 못 볼 것 같다. 다신 오지마라....가라구...!! 얼른!!!
점점 격해지는 어머니가 또 다시 이성을 잃고 쓰러지기 전에 제시는 서둘러 일어나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돌렸다.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뗄때마다 뒤돌아 보며 눈물을 흘렸고 그녀 또한 모질게 제시를 떠나 보낸 그 자리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작은 어머니....무슨 일 있으세요??
반가운 목소리에 그녀는 제시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쳐다 보는 것을 끝으로 돌아섰다. 그녀의 시선이 머물러 있던 곳을 바라보던 그 역시 멀어저 가는 제시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누구예요...?
아니야....우리 류호....작은 엄마 보고 싶어서 또 왔구나...?
제시에게 그토록 모질게 대하며 잔뜩 굳어 있던 그녀의 얼굴은 류호의 방문에 금새 어린아이처럼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작은 어머니 좋아하시는 생선 좀 사가지고 왔어요...저 배고픈데....
그래....? 바쁠텐데...얼른 들어가자...
운의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제시가 떠나간 흔적을 쫒아 그 길을 한번 쳐다보고선 곧바로 류호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버렸다.